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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 여래장이 도 道 이다 불성 사상, 여래장 사상 뜻 의미. 대승불교의 불성 佛性 여래장如來藏!!! 네이버 블로그_8
불성, 여래장이 도 道 이다 불성 사상, 여래장 사상 뜻 의미. 대승불교의 불성 佛性 여래장如來藏!!! : 네이버 블로그
그렇게 함으로써만 여래장사상은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참여를 촉구하는 엄숙한 종교적 진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여래장은 곧 진여(眞如)라고도 표현된다. 진여란 정의를 내릴 수도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궁극적인 진실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유일한 용어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에서 진여라고 한다.
여래장을 언급하고 있는 경전과 논을 들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인 중기 경전은 논의 선구적 역할을 다해 논에 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래장(마음, 자아)이 상주 불변이라는 것은, 무상, 고, 무아, 연기를 강조하신 석가모니의 주장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의 생각과 일치되며 현대과학으로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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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여래장 사상의 성립요소가 되었던 사상은 상당히 다채롭다. 그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관념을 제공한 것은 붓다가 중생에 편재(偏在)함을 설하였던 『화엄경(華嚴經)』 여래출현품 )의 사상일 것이다. 중생의 성불 가능성을 확인하고 구제의 보편성을 수립하는 것이 여래장 사상의 목적이었으므로 이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좋은 물건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나쁜 물건을 팔거나, 표면으로는 그럴 듯한 대의명분을 내걸고 이면으로는 좋지 않은 본심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네이버는 블로그를 통해 저작물이 무단으로 공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작권을 침해하는 컨텐츠가 포함되어 있는 게시물의 경우 주제 분류 기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블로그를 통해 저작물이 무단으로 공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작권을 침해하는 컨텐츠가 포함되어 있는 게시물의 경우 글보내기 기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고 설하고, 이 여래장을 아홉 가지 비유로 밝히고 있다. 이 아홉 가지 비유는《불성론》이나《보성론》등으로 계승되었다. ②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의 변화와 성숙, 또는 그 변화와 성숙으로 일어난 팔식(八識)의 인식 작용.
여래장사상의 성립과 사상적 의의
이를 통해서 볼 때 우리나라의 여래장사상은 신라시대에만 뚜렷한 사상성을 띠고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생의 오온이 모두 무아라고 부르는 것과 https://kampo-view.com/ko-kr 마찬가지로, 중생을 여래장이라 이름하는 것 역시불교의 핵심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 중생은 번뇌가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체는 본래적으로 깨끗한 마음인 자성청정심이고 다만 밖으로부터 번뇌로 더럽혀져 있는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여래장은 6식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6식 중에서 그 존재성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보성론』은 티베트에서 크게 전승된 데 반하여 중국에서는 거의 잊혀진 채 있었다. 그리고 여래장을 인과로 나누어 불일불이로 설명하는 것 또한 여래장이 연기와 공의 뜻이란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는 여래장(불성, 마음)을 실체적인 면으로 본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나 개념적으로만 보시고 말씀하신 것 같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기 이전의 여래장(마음)이나 깨달음을 이룬 이후의 여래장(마음)이나 모두 여래장(마음)이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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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속으로 볼 때 부처.여래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부처로 현실화된 존재는 아닌 것이다. 이렇게 중생(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말하는 개념이 여래장이다. 불교신문 2345호(7월21일자)에 보도된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스님과 충남대 이평래 명예교수의 쟁점토론 ‘여래장사상- 주장과 반론’ 이후, 여래장사상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경북대 강병조 교수와 인도 뿌네대에 재학 중인 허정스님이 최근 보내온 반론문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동국대 김호성 교수로부터 여래장사상의 의미, 초기불교와 여래장 사상 간의 논란이 이는 이유 등을 들어봤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 교수님의 반박 글에서 과연 “여래장 사상과 연기와 공이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그분의 주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본문에서는 여래장 사상의 내용과 의의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에 반하여 여래장계 경론에 대한 중국에서의 역경사(譯經史)를 중심으로 여래장사상의 변천을 살펴보는 견해도 있다. 공과 불공의 의미는 번뇌의 없음(空)과 지혜의 있음(不空)을 설명이고 그것은 붓다가 번뇌가 없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어서 여래장은 상주불변하는 不思議한 佛法이지만, 그것은 6식 및 心法智를 초월한 것이며, 6식으로써 여래장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범부에게도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苦를 싫어하고 열반을 희구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진여가 무명의 연을 만남에 의해 진여의 체가 온통 그대로 일어나 생멸변화하는 만유가 되니 이 생멸 미계(迷界)에 있는 진여를 여래장이라 하였는데, 그러면 무명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이에 대해서 기신론에서는 단지 ‘홀연히 일어났다(易然起)’ 고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서슴없이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왜 불교가 힌두교와 같은가라고 물으면 그들이 답하는 것은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여래장, 불성)이 같다는 것이다. 우리(불교인)가 아무리 그들과 같지 않다고 말해도 그들은 여전히 불교와 힌두교는 같다고 말할 것이다. ‘마음은 뇌의 기능 또는 활동이다’는 사실이 최근 20여년 사이에 뇌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밝혀졌다. 우리 불교도 하루 속히 이 과학적인 사실을 받아드려 이것과 상치되는 교리는 수정하여야 한다. 아니 석가모니가 말씀하신 초기 불교의 교리로 돌아가면 이 과학적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명은 그 시작을 알 수 없으므로 무시무명(無始無明)이라 한다. 무명의 정체를 알 수 없기에 이의 해결을 위하여 여래장연기설에 이어서 후에 법계연기사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은 그 마음속에 불성이 있고 여래를 감추고 있으며, 여래의 태아가 그 속에 갈무리되어 있으므로 중생은 여래장인 것이다. 중생은 모두 여래장이기에 여래가 되는 성불을 기약할 수 있다. 따라서 여래장사상은 깨달음의 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일체중생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무아.연기.공을 말하는 입장에서는 “여래장사상은 불교(초기불교의 불교)가 아니라”고 비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장은 영원불변하고 모든 것의 근원인 브라흐마(Brahma)가 있는데 그 브라흐마(Brahma)가 각각의 아트만(Atman)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브라흐마(Brahma)가 아트만(Atman)이고 아트만이 브라흐마여서 서로의 관계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不一不二)는 것이 그들의 사상이다. 하여튼, 초기불교에 입각한 여래장 사상 비판과 초기불교의 관점을 보다 확충하여 여래장 사상 안에서도 무아.공을 발견하여, 양자 사이의 일음성(一音性)을 확인해 가는 노력 모두를 축적해 갔으면 싶다. 이때 주의할 것은 비판 역시 주석이나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결코 대체나 지우기를 통해서 이루어져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때의 마음은 ‘마음’이라는 개념 내지 단어만 같은 것이다. 싯다르타가 연기, 사성제, 무아, 공, 중도 등의 이치를 깨달은 후의 뇌는, 뇌의 구조나 기능면에서 깨닫기 전의 것과는 다르다. 깨달은 후의 뇌의 기능은 욕망과 애착이 적고 자비로 충만한 뇌로 바뀐 것이다. 두 개의 갈대 다발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처럼 마음(na-ma, 名)과 몸(ru-pa, 色)도 그렇다는 것이다. 명색(名色)이란 ‘na-ma-ru-pa’를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태란 모태와 태아의 쌍방을 뜻하며, ‘그 태내에 불(佛)을 잉태한 것’과 ‘성장해서 불이 될 태아’라는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생래적(生來的)으로 갖추어진, 여래(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여래장 또는 불성(佛性)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대승불교에서는 주로 후자의 의미이지만,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전자와 후자의 두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을 일심법(一心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양자가 동일한 것이고, 오직 강조하는 측면이 다른 데 지나지 않는다. 감이라고 하는 것도 개념 내지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이며, 감의 본성이란 것도 없으며 단어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를 깨치기 전의 싯다르타나 도를 깨친 후의 싯다르타는 같은 싯다르타이다.
이것이 추상화되어 교의적 개념이 되었으나, 중생을 지시하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즉 중생이 여래의 태아로서 여래 안에 포용되어 있는 상태, 또는 중생이 자신 안에 여래가 될 태아 혹은 여래의 소질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후자의 경우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의 주체적인 마음을 탐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여래장 사상은 유식 사상과 연관성을 가진다. 즉 여래장은 중생심 안에 해탈의 심성인 여래성이 있다는 입장이고, 유식 사상은 마음이 일체 존재의 근원이라는 근원적인 입장에서 마음의 현실적 기능 분석에 치중하고 있다.
색신이란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나타낸 몸이고, 법신은 부사의한 법으로 이루어진 몸임과 동시에 붓다의 배후에 있는 절대신, 나아가 법계와 같이 광대 무변한 존재는 의미를 가진다. ① 여래장사상 제 1기 경전 如來藏經, 不增佛減經, 勝曼經..이때까지는 마음의 문제에 관해서 本性不潔의 측면 즉 如來가 될 수 있는 因正因佛性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 특히, 8세기 이후의 중국불교교학 중에는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를 통한 해석이 기신론사상으로 일반화되었고, 그 경향은 화엄 이외의 학파에도 널리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원효는 전체 46종의 저술 중 16종의 여래장사상 계통의 주석서를 저술하였고, 또 여래장계 중심 경론 10종 중 7종에 대해서는 주석서를 남겼다. 『여래장경』과 『불성론』의 주석서는 없지만 그의 현존하는 저술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능엄경』은 그의 시대에 직접 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취급할 수가 없었다.
- 좋은 물건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나쁜 물건을 팔거나, 표면으로는 그럴 듯한 대의명분을 내걸고 이면으로는 좋지 않은 본심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 대승기신론 등은 여래장사상을 형성시킨 주요한 논서이다.
- 이처럼 여래장 즉 ‘여래이어야 할 태아’는 결국 중생에 있어서 번뇌에 덮혀서 나타나지 않는 무량번뇌소전(無量煩惱所纏)되어 있는 ‘여래이어야할 인因 또는 본질’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기신론》의 아리야식은 유식의 알라야식처럼 잠재심은 아니다.《기신론》에는 잠재심과 표면심이라는 대응관계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 그리고 불교 주류의 가르침은 오온 외에 절대로 나라는 실체가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여래장사상은 널리 유통되고 있는데 특히 해동소(海東疏)라 불리는 원효(元曉)의 기신론소. 별기는 원효의 불교사상을 바로 여래장사상이라고 규정짓게도 할 만큼 여래장사상의 대표적 문헌으로 여겨져 왔다. 거기서 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이 중관과 유식의 대립을 화해시켜서 회통하고 있다는 주장이 보여 더욱 주목되고 있다. 원효는 이러한 여래장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자각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우리나라의 여래장사상은 『대반열반경』과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여래장계의 주요 경론들이 신라 고승들에 의하여 대부분 연구되었음을 알 수 있다.